birthday


새벽이었고 비가 내렸다. 천둥소리에 나는 갑자기 두려워 잠을 깼다.

그리고 습관처럼 핸드폰액정을 열고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는 액정에 실눈을

대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때는 새벽이었다, 이른시간.

나도 모르게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12시 정각부터 날아든 몇개의 생일축하메시지들을

다시 보았고 나는 잠을 청했다. 천둥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번쩍, 하는 짧은 섬광 뒤에

날아올 천둥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이불을 껴안았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언젠가부터 라디오나 음악을 틀지 않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지.

밤이 두려워지는때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체온이 그리웠다. 그래도 올해, 언젠가부터 나는

라디오도 음악도 틀지 않고 그저 누웠다.


미래는 내게 두렵고도 기대되는 것이었지만 지금 내게는 큰 기대도 두려움도 남아있지 않다.

미래는 그저 아직 오지 않은 것일뿐이겠지. 나의 의도대로 삶이 흘러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이불을 껴안고 천둥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지나갈 내 시간들을 떠올렸다. 벌써 스물아홉살이구나. 한숨이 나온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서른살이 되고 싶었다. 서른살이 되면 나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平安'을

찾을 수만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정말 그 평안이란 것을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내년은 대학원생으로서의 삶,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삶, 이 두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대학원생으로서 나는 안암동에서 있게 될지도, 광주에 있게 될 지도,

청주나 대전에서 지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좀 더 여유란 의미에 다가서겠지. 그렇게 다시 오래된 법서들을 새로이 뒤적이며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재단하며 연단하는 시간을 갖게 될거야. 응, 그런 삶은 내게

평안할거야.


직장에서 일을 할지라도 나는 평안할거야. 쉽게 적응하고 어른들께 공손하며,

성실하게 굴테니까. 응, 잘 지내겠지. 그렇게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겠지. 응, 응.


저 두 모습중 어떤 모습이라도 나는 옳다고 결론짓기로 했고, 사실 그 모두는 내게

옳고 정의롭다. 삶에서 그리 커다란 기대와 실망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 크게 기대해서, 크게 실망해서 얻을게 뭔데?


그런 생각을 하던중 나는 어수룩하게 다시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천둥은 사라져있었다.

스터디원들이 마련해준 생일 케익은 맛있었고 생일축하노래도 고마웠다.
 
기대하지 않은 생일축하메시지에 감동하기도했고, 그에게 고마웠다. 감사해요, 미안해요.

저녁식사에 만난 金은 역시 좋은 친구였다. 이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집을 찾아냈고

와인도 향긋했다. 누가 뭐래도 난 너를 사랑한단다, 친구야.


그렇게 나는 스물아홉살이 되었고 곧 서른살이 될 채비만 남았다. 비와 천둥으로 시작된

나의 생일, 그래도 어제는 몇번의 햇빛을 보았으니 나는 만족해.

life is just a lullaby. 천둥과 번개가 있더라고 낮에는 해가 들고,

자장가같은 삶을 살고, 그런 삶같은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었던 어젯밤이

나는 그저 좋았어. 그랬다고, 그랬던 하루였다는거야.





by pass | 2008/08/13 21:59 | dear diary | 트랙백 | 덧글(2)
brave

1.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올 3월 초순이었고 나는 우연히 중앙광장의 휴게실에 앉게 되었다. 그곳의 피아노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모두'에게 개방된 곳은 아닌 관행(慣行)이 존재했다. 어느정도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만이 연주하고 있던 그곳에서 나는 차마 피아노의자를 당겨볼 엄두도 내보지 못했다. 그런 그곳에서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곡목은 캐러비안의 해적들 주제가였다. 장중한 인트로가 시작되었고 힘찬 연주가 시작되었다. 오래 지나지못해 그녀는 다른 음정을 자꾸 쳤고 끝내 음악을 더 잇지 못하게 되었다. 보통의 학생들이라면-아마 '나'였더라면이 더 정확할지도- 연주를 멈추고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겠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연주한 곡은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었다. 그곡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피아노 명곡집에 들어있던 '워털루 전쟁'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워털루 전쟁이라니, 그것도 중앙광장의 그랜드 피아노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하필 그 곡을 연주하다니. 나는 괜시리 붉어진 것만 같은 나의 볼을 감추며 그를 곁눈질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그 곡을 온 감정을 실어 연주를 끝내고 유유히 친구를 불러 빠져나왔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부러워졌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이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여러 덕목중 가장 위대한 덕목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무살 시절 내가 좋아하던 여자는 노래방에서 음정이 맞지 않아도 기를 쓰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여자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그런 용기, 스스럼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그는 누구보다 용감했고 아름다웠다. 그녀 뒤에 연주되었던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의 음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용감한 그녀는 내 뇌리에 남았다. 당신의 용기가 나는 정말 부러웠어요.


2.언제 어느 장소에서도 그는 당신이 제일 좋다고 크고 씩씩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쁜 미소와 힘찬 목소리, 그리고 기댈만한(지금도 기대고만 싶어지는) 높은 어깨가 간혹 그립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타고난 밝은 성품과 태도는 마치 나와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다른 차원의 존재인듯보였다. 그의 용기와 밝음은 아름다웠고 가끔-아니 종종일지도 몰라-그가 그리워진다. 당신이 가진, 내가 갖지 못한 밝음과 기쁨, 그리고 용기는 당신과 당신의 주변에 밝은 빛이 되어 지금도 빛나고 있겠지. 미안한 사람, 당신의 앞길에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하기를.



3.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다. 가끔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되고 알게된다. 모든 것이 아닌 나무의 잎사귀처럼 버려져야만 하는 작은 것들을 버릴때도 나의 태생적인 비겁과 용기의 부재는 모든 것을 어렵게했다. 그렇게 -적어도 내가 보기에-많은 것을 그리 버리고 떠났던 그의 용기는 내게 무서웠고 두려웠다. 쌓여진 자취들이 깊은 산속에 오솔길을 만든 것처럼 나의 기억과 온 몸, 그리고 주변에는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두려워했을지라도- 버리고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처럼 버리지 못해서 버리지 않아야만 했던 것들을 버렸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버려야 했던 것들을 버리지 못했을지라도, 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들을 버렸을지라도 이젠 가야만한다는 최승자의 시구를 다시 떠올리며 나는 앞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저 시구를 난 더 일찍 떠올려야만 했을런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다시 생각하게 된것도 감사해야할 신의 섭리일지 모른다. 끝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워털루 전쟁을 연주했던 이름모를 그처럼, 나는 그럴 용기를 지니고 주변과 내 자신의 억압, 두려움, 세상의 관행에서 벗어나고싶고 그래야한다. 용기, 내가 가지지 못한 위대한 덕목들, 지난 반년간의 지독했던 시간들속에서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만으로도 나는 성장한,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싶다. 용기를, 그리고 의지를.


by pass | 2008/07/24 23:56 | dear diary | 트랙백 | 덧글(1)
L'Inde imaginaire




인도는 어떤 상상의 나라로 간주함으로써 비로소 그 실체와 더 가까워 질 수 있다.


사람은 왜 여행을 하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하다-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일단 사용하고나서 목표에 도달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 썼던 사닥다리를 발로
 
밀어 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의 인식인)하는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그 멀미 나던 여러날과 기차속에서의

불면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실제에 있어서는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이미 끝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장소와
 
순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로

그 악기의 위력을 문자 그대로 자기자신에게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 말로 가장 참된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다....

어떤 광경들,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어야 마땅할 것들이 마음 속에 무한한 공허를

만들어놓고 있다.


-Jean Grenier, Les Iles-


어느새 나는 다시 인터넷을 드나들며 인도항공권의 가격을 검색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
 
집에 돌아와 일년만에 다시 '섬'을 펴보았다.

그렇게 갑자기 나는 오늘 인도가 떠올랐고 가고 싶어졌다. 나는 행복해지고만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삶,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삶.

'상상의 인도'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곧, 나는 저 상상의 대륙에서

지금의 불면과 불안들을 되찾고 버릴 수 있겠지. 지독한 고독과 냄새속에서, 지금의 나처럼.

by pass | 2008/07/23 00:14 | dear diar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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