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다시 라 도라다까지 갑시다."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도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도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1. 내 인생에서 가장 벅찬 엔딩을 보여준 소설은 콜레라시대의 사랑이었다. 노화와 신분, 낭만과 과학,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53년 7개월 11일을 기다려 이루어낸 아리사의 사랑은 실로 장엄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롱베이의 배 위에서, 하노이공항에서 9시간을 대기하며 읽은 저 소설의 결말에 가슴이 벅차고 어지러웠다. 두렵고 멋지고 비루하고, 지독해보이는 저 사랑을 뭐라고 이야기해야할까.
2. 2012. 5. 12. 11시는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나는 오기쁨과 결혼을 했다. 아니, 우리는 결혼했다. 시온성교회의 박봉상목사님께서 주례를 보았고 우리는 잠실의 더 베네치아에서-가보지도 못한 이탈리아의 한 도시의 이름인, 마치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가는 것을 기념하는듯-결혼을 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의 11분임원들은 잘 하지도 못하는 춤과 노래를 준비했고 그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은 차라리 감동적이었고 고마웠다. 엄마의 이름이 적힌 '故' 우인숙 권사의 아들을 보러 먼길을 찾아오신 분들도 많았고 나를 보러 와주신 분들도 많았다.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오랜시간 함께한 고등학교 친구들도-울산에서, 영암에서 와준 두 친구에게 무한한 축복있으라-, 익산에서 올라온 후배들, 교수님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함께 늙어가는 고대법대 동기들, 교회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3. 우리가 결혼을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고 함께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임합격과 오기쁨이 부부가 되었을까. 이 놀라운 세상은 내게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세상은 내게 해답이 아니라 결론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고 오늘 전입신고까지 마치게 되었다. 내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는 여기까지 먼길을 오게 되었고, 우리가 지내온 시간의 열배정도를 앞으로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검고 짙은 나의 눈썹이 희어지고, 풍성한 음모가 드문드문 사라지고, 눈밑의 주름이 깊어져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워질만큼 우리는 늙을 것이다. 검은 검버섯으로 가득차 늘어진 뱃가죽을 기대며 늙어갈 이 몸뚱아리를 기댈 사람은 우리 서로뿐이다. 촉촉하고 단단했던 우리의 성기도 흐물흐물하게 말라갈 것이고 우리의 향긋했던 몸은 시큼한 노인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시간과 노화는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과 노화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흉해지고, 늙어가고, 서로의 분비물로 지저분해질 집안과 우리의 마음속을 '그래도' 견디게 해줄 존재는 나와 당신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는지.
4. 아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들 둘 딸 둘을 낳으라고 하셨다. 홀로 폐백을 받은 외로운 나의 아버지는 그저 잘 살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때 더욱 엄마생각이 더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을 마치고 우리는 잠실롯데로 들어갔다. 잠실롯데의 28층에서 나는 세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28층에서 본 야경의 아름다움과 지친 몸이었다. 아들 둘, 딸 둘. 그렇게 낳아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아내는 힘들겠지만 무려 넷을 낳으면 좁은 집이 와글와글 시끄럽겠지,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커나가는 집을 보며 흐뭇할 것 같다. 집은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조금씩 작아질 테지만 우리의 몸으로 번 돈으로 아이가 커나갈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게 살고싶다. 어여.
5. 결혼식은 힘든 과정이다. 아침부터 메이크업을 하고-그래봐야 내 메이크업은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옷을 입고 인사를 하고 식을 치른다. 그 전에 준비는 더할나위 없고. 모든 의식에는 의미가 있다. 힘든 성인식과 통과의례가 인류역사상 사라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만큼 의미를 찾고,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내가 얻은 공직의 자리는 내가 얻은 변호사자격보다 값지다.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내가 들였던 노력과 어려움의 차이 때문이다. 결혼의식도 다르지 않다. 어려운만큼 값지고 눈물겹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낸 우리의 결혼은 어려워서 더 값지다. 이 값진 순간과, 우리가 얻게 된 이 작은 공간이 얼마나 감사한가.
6.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지루한 반복이며 끝없는 도돌이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빌어먹을 왕복여행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의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고, 그 반지는 우리의 끝없는 여행에 대한 의지를 상징한다. 아무리 지루하고, 괴롭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끝없이 하루하루를 되풀이하며 여행할 것이다. 바로 우리 목숨이 다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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