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8. 우리 목숨이 다할 때 까지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다시 라 도라다까지 갑시다."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도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1. 내 인생에서 가장 벅찬 엔딩을 보여준 소설은 콜레라시대의 사랑이었다. 노화와 신분, 낭만과 과학,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53년 7개월 11일을 기다려 이루어낸 아리사의 사랑은 실로 장엄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롱베이의 배 위에서, 하노이공항에서 9시간을 대기하며 읽은 저 소설의 결말에 가슴이 벅차고 어지러웠다. 두렵고 멋지고 비루하고, 지독해보이는 저 사랑을 뭐라고 이야기해야할까.



2. 2012. 5. 12. 11시는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나는 오기쁨과 결혼을 했다. 아니, 우리는 결혼했다. 시온성교회의 박봉상목사님께서 주례를 보았고 우리는 잠실의 더 베네치아에서-가보지도 못한 이탈리아의 한 도시의 이름인, 마치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가는 것을 기념하는듯-결혼을 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의 11분임원들은 잘 하지도 못하는 춤과 노래를 준비했고 그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은 차라리 감동적이었고 고마웠다. 엄마의 이름이 적힌 '故' 우인숙 권사의 아들을 보러 먼길을 찾아오신 분들도 많았고 나를 보러 와주신 분들도 많았다.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오랜시간 함께한 고등학교 친구들도-울산에서, 영암에서 와준 두 친구에게 무한한 축복있으라-, 익산에서 올라온 후배들, 교수님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함께 늙어가는 고대법대 동기들, 교회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3. 우리가 결혼을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고 함께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임합격과 오기쁨이 부부가 되었을까. 이 놀라운 세상은 내게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세상은 내게 해답이 아니라 결론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고 오늘 전입신고까지 마치게 되었다. 내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는 여기까지 먼길을 오게 되었고, 우리가 지내온 시간의 열배정도를 앞으로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검고 짙은 나의 눈썹이 희어지고, 풍성한 음모가 드문드문 사라지고, 눈밑의 주름이 깊어져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워질만큼 우리는 늙을 것이다. 검은 검버섯으로 가득차 늘어진 뱃가죽을 기대며 늙어갈 이 몸뚱아리를 기댈 사람은 우리 서로뿐이다. 촉촉하고 단단했던 우리의 성기도 흐물흐물하게 말라갈 것이고 우리의 향긋했던 몸은 시큼한 노인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시간과 노화는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과 노화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흉해지고, 늙어가고, 서로의 분비물로 지저분해질 집안과 우리의 마음속을 '그래도' 견디게 해줄 존재는 나와 당신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는지.


4. 아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들 둘 딸 둘을 낳으라고 하셨다. 홀로 폐백을 받은 외로운 나의 아버지는 그저 잘 살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때 더욱 엄마생각이 더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을 마치고 우리는 잠실롯데로 들어갔다. 잠실롯데의 28층에서 나는 세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28층에서 본 야경의 아름다움과 지친 몸이었다. 아들 둘, 딸 둘. 그렇게 낳아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아내는 힘들겠지만 무려 넷을 낳으면 좁은 집이 와글와글 시끄럽겠지,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커나가는 집을 보며 흐뭇할 것 같다. 집은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조금씩 작아질 테지만 우리의 몸으로 번 돈으로 아이가 커나갈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게 살고싶다. 어여.


5. 결혼식은 힘든 과정이다. 아침부터 메이크업을 하고-그래봐야 내 메이크업은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옷을 입고 인사를 하고 식을 치른다. 그 전에 준비는 더할나위 없고. 모든 의식에는 의미가 있다. 힘든 성인식과 통과의례가 인류역사상 사라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만큼 의미를 찾고,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내가 얻은 공직의 자리는 내가 얻은 변호사자격보다 값지다.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내가 들였던 노력과 어려움의 차이 때문이다. 결혼의식도 다르지 않다. 어려운만큼 값지고 눈물겹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낸 우리의 결혼은 어려워서 더 값지다. 이 값진 순간과, 우리가 얻게 된 이 작은 공간이 얼마나 감사한가.


6.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지루한 반복이며 끝없는 도돌이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빌어먹을 왕복여행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의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고, 그 반지는 우리의 끝없는 여행에 대한 의지를 상징한다. 아무리 지루하고, 괴롭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끝없이 하루하루를 되풀이하며 여행할 것이다. 바로 우리 목숨이 다할때까지.

2012. 4. 4. 春來不似春


1. 기침이 나고 목이 붓고 미열이 난다. 비바람을 맞고 찬바람을 쐬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축농증치료까지 한참을 받았다. 거의 다 나은 줄 알았지만 비를 맞고 힘든 시간을 지내니 다시 시작된다. 열에 들떠 붉어진 얼굴을 하고 타이레놀 한알에 약국에서 음료로 주는 쌍화탕 한병을 곁들여 자리에 누워 이불을 꼭 껴안고 잠에 든다. 이제 드라마를 봐도 별 재미가 없다. 이게 다 무엇때문일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날씨 때문일까.


2. 이번 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정말 봄다운 봄이어야 한다. 나는 5월에 결혼을 하고 다음주면 이스탄불에 여행을 가고 4월 말이면 직장을 갖는다. 운이 좋으면 변호사 자격수당 5만원을 더 받으며 동료들보다 훨씬 더 윤택한 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분임원들과 국토순례를 하고 해외연수를 떠나고 서로 챙기고 공부하며 반년을 보낼 시기가, 중간관리자로서 공직에 한발 들여놓을 교육의 시기가, 오랜시간 땅속에서 지냈던 굼벵이들이 허물을 벗고 날기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갑자기 다가온다. 난 남편이 되고 사위가 되기도 한다. 내 이름으로 된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을 하고 공무원연금을 낸다. 정말 꽃같은 봄이다. 아니, 꽃보다 더 꽃같은 봄이 다가올 것이다.


3. 어제는 분임원들을 처음 만나봤다. 다들 제각기 전공에, 직렬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우수하고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교육을 받고 배우며 좋은 인연을 시작하게 된 것은 커다랗고 바꿀 수 없는 큰 축복이다. 자아존중감이 충분한 사람은 본인보다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자아존중감이 높아진 것인지, 스스로까지 잘 속이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임원들과의 첫만남은 즐거웠고 앞으로의 분임생활이 기대되었다. 어찌보면 첫 직장에서의 첫 만남인 동료들이고 몇십년 후에도 전화한통으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국가의 동량들이다. 그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



4. 열이 잘 가라앉지 않는다. 부은 목과 기침도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시기가 처음은 아니다. 용두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를 시작했을 때, 미열과 우울함은 오래도록 시간이 걸려서야 좋아졌다. 해를 보며 운동을 하고 걷고 기도했다. 아마 해가 떠오르고 따스해지면-비로 나를 둘러싼 환경과 배경은 그대로일지언정,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Just as you are,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낄 수 있는...-나아지겠지. 아니, 다음 주 이스탄불행 밤비행기를 타고 나면 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야소피아를 보고 애플티와 터키쉬 커피를 마시며 돌아다니는 것만으로-3일만 돌아다니면 지겨워지겠지만. 대체 누가 이스탄불만 6일을 여행한다니, 어쩌겠어요. 그게 나인걸.-조금 지친 내 영혼은 충만해 질 것 같다.


5. 감출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 기침, 사랑, 가난이다. 이제 나는 이 세가지를 모두 가진셈이다. 이중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봄이 와야 할 시기에 아직 봄은 오지 않았지만 시간은 비가역적이고 봄은 반드시 온다. 나의 기침과 가난은 나의 힘으로는 손댈 수 조차 없는 것들이라 나는 무력함을 느끼고 다시 무력해진다. 어쩌면 나는 무력해서 내 무력함을 견디려 열을 내고 기침을 해서 뱉어내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코와 목 언저리 어딘지도 모를 그 어중간한 자리에서 끈끈하게 붙어 괴롭히는 가래를 내 힘으로 뱉어낼 수는 없다. 그 가래는 나의 가난이고, 그 가래가 바로 나를 만들었고, 나의 일부고, 바로 나다. 봄이 와야 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처럼 봄은 곧 올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얼마전 타계한 故이성부시인을 추모하며






2012. 3. 25. 발표.

1. 과천정부종합청사 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Vincero라는 예쁜 파스타집이 있다. 1단지 아파트에서 역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고, 그리 비싸지 않지만 아름다운 가게였고, 비오는 날씨에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헤맬 마음이 없어 우리는 무작정 들어갔다. 파스타 하나와 피자 하나, 그리고 기분을 내보자며 먹지도 못하는 와인-4천원의 하우스 레드와인, 아마 마주앙정도가 아닐까.-과 하이네켄 한병도 시켰다. 창가의 자리였고 비오는 풍경과 적절한 조명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짠, 하고 잔을 부딪혔다. 나는 감사하다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吳는 축하한다고 말하며 즐거이 잔을 들었다. 곧 음식이 나왔다.

2. 변호사시험발표가 난 시간은 23일 5시였다. 난 5시 10분쯤 확인을 했고 吳에게 '자기 나 合格했어'라고 얘기했다. 행시와는 달리 법무부는 문자하나 보내지 않았다. 부랴부랴 아버지께 전화를 하고, 친구와 친지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막상 연락을 돌리려니 돌릴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에게, 동생에게, 이모님에게, 고모에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나머지는 친구들이었다. 아니, 합격한 친구들이었다. 이사무관에게도 전화가 왔다. 고마운 친구구나.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우린 저녁을 먹으러 잘 알지도 못하는 과천청사역 주변으로 나가보았다.


3. 당연히 나는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여러번의 시험을 봤고 여러번의 발표를 경험했지만 한번도 전날 잘 잔적은 없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더이상 이렇게 '인생을 걸고' 봐야하는 시험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더 이상은 볼 여력이 없다. 지난 변호사시험을 보며 다시는 이런 시험을 위해 남은 삶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고, 더 이런식의 공부를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잠을 잘 못이룬채 혼자 아무도 없는 신혼집에 들어와 인터넷을 하고, 티비를 틀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것은 매번 그대로다. 발표직전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이 버릇도 이제 여기까지다. 남은 삶에서 공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난 아마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공부는 삶이고, 삶은 공부다. 계속되는 공부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고시공부'가 지겨운 것이었다. back to the real life, 윤상의 앨범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바로 그거다. 삶을 살며 살아가는 공부를 하고싶다. 잠도 잘 자고, 주변도 챙기고, 가장노릇을 하고.


4. 엄마는 걸음이 빨랐고 성격도 급했다. Vincero에서 잔을 부딪히고 밥을 먹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성격도 급해서 아들 이런 자리도 안보고 먼저 가셨다며 농담을 했다가 눈물이 났다. 괜히 좋은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나보다, 싶었지만 吳의 눈시울도 붉어져있었다. 성격도 급하시긴. 일년반만 더 사셨으면 아들 변호사자격증도 보고 결혼식도 보셨을텐데. 아들을 키우려 가정부 노릇을 하고, 저녁에는 병원 김장김치를 3일동안 담궈 번 3만원으로 8살 아들에게 부츠를 신기고 예쁘다며 웃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잊고 싶은 기억은 잊히지 않는 걸까. 김애란의 소설에서 만두를 빚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살과 피가 만두가 되고 그걸 먹고 아이들은 자랐다. 내가 그랬다. 엄마의 살과 피가 나를 먹일 돈이 되었고 그 사랑과 엄마의 생명으로 여기까지 왔다. 나의 팔할은 엄마의 사랑과 생명이다. 기뻤던 순간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다시 감사했고 아쉬웠고 슬펐다. 예끼, 급한 사람같으니. 뭐 그리 바쁘다고 먼저 가셨나.


5. Vincero는 승리라는 뜻이란다. 나는 승리한 것일까. 2010년부터 오늘까지 내 삶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내 삶의 변화는 대부분 발표와 함께했다. 내가 법과대학입시에 떨어졌더라면, 사법시험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법학전문대학원시험에 떨어졌다면, 정유회사의 추가합격 전화를 받은게 아니라 합격자발표가 진작에 났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텐데. 내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내 인생이 승리한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해본적이 없다. 나의 20대는 살아남기위한 시기였고, 이제야 그런 시기를 벗어난 셈이다. 그런데 승리라니. 가당찮은 말이다. 이제야 준비를 끝내고 느지막하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먹고살게 된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런 일상적인 삶을 갖기 위해 나는 32년을 학교와 고시촌에서 보냈고, 내게 이런 삶을 주려고 엄마는 그 모진 고생으로 날 키웠다. 평범한 일상의 삶, 그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승리자일 수도 있다.

6. 예상외로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발표문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든 생각은 기쁘다! 라는 감정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었다. 안도감,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 험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을 갖는다는 것이. 불행히 안도의 순간을 갖지 못하고 다시 일년간 이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동기들에게 위안을 전하고싶다. 고시도 아니고, 사법시험도 아닌데 떨어졌다는 자학감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힘들 그들에게 일년은 금방 지나가고 하늘은 더 크게 쓸 사람을 위해 더 큰 시련과 연단을 예비해놓았다는 옛말을 전하며 남은 9개월간 건강과 평안함, 그리고 일년후 더 나은 자리에서 멋진 법률가로 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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