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5. 크리스마스 dear diary


1. 메리 크리스마스. 다시 한번의 성탄이 지나간다. 12월 22일을 전후로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은 더욱 복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괜히 축구선수들의 세레모니를 흉내내며 우권사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쳐보았다. 사실 지난 11일 첫기일에 우리가족은 각자 엄마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놓기는 했다.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2. 내 책상 PSb 알파 스피커 오른쪽 조 위에는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놓여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그 위에는 카드도 있다. 하트무늬가 여러개 모인 카드의 내용은 더욱 값지다. 이제 일주일후면 올해가 끝나고 나는 시험을 본다. 이 시험은 길기도 하다, 어린시절부터 직업을 얻고 '자격증' 하나를 손에 넣으려 정말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자격증을 손에 넣을지 넣지 못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른 세살의 나는 이제 세상에 나가게 된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3. 요즘 Misfits라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간을 돌린다면 그건 언제가 되어야 할까.우선 나는
지난해 2차시험직후로 바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바로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제주도나 외국에 나갔다와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들고 바로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지. 하지만 그래도 늦잖아. 그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생각이었다. 2차시험을 다시 보기 싫었던 거다. 그래서 바로 생각을 바꿨다.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2008년으로 돌아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는거다. 그리고 바로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면 그때, 엄마의 폐암은 기껏해야 1기아니었을까. 


4. 아냐,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그냥 1998년 겨울로 되돌아가야겠다. 순천향대 의과대학에 입학했어야 했어. 응. 그러면 엄마가 고생을 덜했을거고, 난 인턴이 되자마자 엄마를 병원에 보냈겠지. 그러면 암도 걸리지 않았거나 초기에 발견했을거야. 이런 공상을 하던 중, 이게 다 무슨 의미야. 


5. 인생이 아름답다면, 바로 그 인생에 끝이 있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끝이 없고 영원히 계속되는 모든 것은 아쉽지도 그립지도 않다. 종말이 있어 삶은 더 아름답고 값지다. 2010년 吳가 내게 준 시계와 손수 짠 목도리가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면, 나와 그가 영원히 살게 된다면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다시 오지 않는 그 순간과 기껏해야 6.70년 안에 모두 사라질 우리의 존재가 전제되어야만 순간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있다. 엄마는 그래서 내 마음에 남아있고 난 이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진다.


6. 곧 시험이 끝나면 뭘할까, 난 그냥 방에서 드라마나 보다 여행을 갔으면 싶다. 독서실같은 곳에는 얼쩡도 하지 않을것이고 두터운 법서들도 한동안은 보지 않을 예정이다. 준비, 준비, 준비, 지긋지긋하고 지겹다. 차라리 나가서 일을 해야겠다. 책상에 앉아서, 골방에 박혀 세상을 논하는 일은 더이상 싫다. 소설이나 책을 보는 것과 고시공부를 하는 일은 너무나 다르다. 난 다시는 그런 짓을 하고싶지 않다.


7. 펴보지 않은 책들이 많고 점점 두려워진다. 하지만 겁먹지 않으려고. 크리스마스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니까. 훗.  


 

2011. 11. 5. 따뜻한 가을. 미분류


1. 가을인데 따뜻하다. 신림의 가을은 더 춥고 싸늘해야하지만 올해는 예전과 다르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안암과 신림을, 고덕의 대학병원을 왔다갔다하며 몹시 추웠던 기억이 난다. 마음도 몸도 더없이 추웠고 이상하게 차가운 바람과 공기에 떨었고 더러 눈물도 흘렀다. 7년전의 신림도 더없이 추웠다. 처음 겪어보던 엄청난 두려움에 마음 둘 곳도 몸둘 곳도 없었던 나는 그저 헤매였고 결국, 그랬다. 7년전과 1년전의 이곳은 추웠고 슬픈 곳이었다.

2. 올해는 이상하게 따뜻하다. 곧 추워지겠지만 예전처럼 추워 견딜 수 없는 날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은 호수를 보고 낙엽을 밟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는 뜨거웠고 땀이 흘렀다. 뜨거운 햇살에 따가울 정도로 눈이 부셨다. 집에서 홀로된 아버지를 뵙고 오는 발걸음은 가벼울리 없지만, 이번에는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吳와 식사를 하고, 집에 바래다 드린 후 둘이 어머님을 뵙고 왔다. 이제 한달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년이 된다. 그날의 그곳은 추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싶었고, 추모공원을 지나고 차가운 방에 친지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나누고 힘내라며 떠난 방의 휑한 공허와 아파서 일찍 잠든 동생의 모습, 각자 자기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던 그 날은 그릭 기억할만한 날은 아니다. 장례식에 찾아왔던 朴판사는 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 공허함이 클 것이라 말했었고, 그 말은 집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 공허함은 뭐라 말해야 할까, 마치 집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집뿐이 아니라 우리 가족과 나의 팔할이 사라진 듯한 그 공허함과 심연에서부터 아득한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요켠대 지난 가을과 겨울은 내게 그리도 추웠고 우리 가족에게는 지독히도 가혹했다.


3. 지난 가을에 나는 입안이 모두 헐어 엉망진창이 된 채, 가끔은 吳의 차안에서 엉엉 참지못해 섧게 울기도 한 부은 눈으로 면접준비를 위해 안암에서 신림을 오가며 두려워 떨었다. 면접이 두려웠고, 날아가버릴 내 4학기도 조금은 두려웠지만, 엄마가 사라질까봐, 혹 엄마가 사라지지 않고 더 아플까봐 두려웠다. 어쩌면 엄마가 못견디게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두려웠을까. 그렇게 그 가을은 내게도 지독하고 추웠다.


4.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속에 면접을 끝내고 나오던 과천의 정부청사주변의 수목과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다. 나오던 길에 하늘을 보며 눈물이 주룩 흘렀다. 입은 헐어 더 이상 한마디도 더 얘기하기 싫었고, 한 움큼도 내 안에 없던 여유와 웃음을 억지로 가장한 두 불과 눈의 근육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눈물이 흐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吳의 차를 타고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블렌드를 마시며 바로 고덕의 병원으로 향했다. 병간호에 지친 아버지를 위해 앞의 이마트에 들러 이런저런 것들을 사고 엄마와 아빠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미 엄마의 목소리는 크게 잘 나오지 않았고, 엄마는 울며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해. 엄만 아들이 이렇게 힘든 시험을 준비하는 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마음만 아프게 해 미안하다고 또 울었다. 바보같은 여자같으니. 자꾸 눈물나게 울고 있어. 엄마를 한참 안았다. 다 잘될거고 엄마덕에 여기까지 온거니 아무걱정 하지 말고 어여 낫기나 하라고 계속 이야기했고 엄마는 이미 풀릴 것 같은 눈으로 눈물을 계속 흘렸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벌써 지쳐있었다. 한참 그렇게 엄마와 아빠옆에 있다 짐을 챙겨 이천으로 내려갔던 것 같다. 아니, 이천이 아니라 익산이었던 것 같아.


5. 그리고 이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짐을 챙겨 올라가는 길에 계속 가슴이 떨렸다. 의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고향으로 모시라고 했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하는 것은 의사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나와 동생을 불러 이야기했고, 더 이상은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다음날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갔고 그 앰뷸런스 안에서 나는 두려웠다. 앰뷸런스를 타기 직전에 엄만 나와 동생을 불러 유언을 하셨다. 아버지에게 잘해야 한다. 반드시 화장을 해라. 교회에 2천만원을 헌금하도록 해라. 내게 꼭 공부를 마치고 변호사가 된 후 결혼을 해라. 그정도만 기억난다. 그리고 난 엘레베이터옆에서 金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이천으로 내려왔다.

6. 내려가자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6인실은 힘들었고 다음날 간신히 1인실로 옮겼다. 1인실로 옮기기 직전 세호형이 찾아왔고 어머니께 인사를 한 후 형을 모시고 청목에 가서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를 하던 중 행정안전부에서 합격을 알리는 문자가 왔고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왔다. 잠깐 웃었고 엄마를 보자 엄마는 처음으로 환히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싶어 난 십년의 세월을 이렇게 보낸 것이다. 웃긴 일이라 치부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한 순간이었다.


7. 그리고 엄마는 기뻐했고 기력을 찾았지만 잠깐이었다. 돌아가시던 날은 주일이었다. 다행히 돌아가시는 날은 아프다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지난 가을과 겨울은 지났다.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엄마가 보고싶어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


8. 올해의 가을은 이상하게 덥고 춥지 않다. 난 지난해와 달리 별로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보았고 힘든 시험도 쳐보았고 두려움에 잠못들기도하고 애타게 기다려보기도 했고, 너무나 슬퍼해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게 크고 무서운 일이 얼마나 된다고. 세상일에 예전과 달리 조금은 심드렁해졌다. 그래서 예전보다 잘 자고 잘 먹고, 종종 엄마를 꿈에서 보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지내고 살아간다. 여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고, 엄마가 아닌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료이자 사랑이 될 사람을 힘겹게 다시 만나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 변호사시험은 합격률이 75%라고 한다. 나는 부족하고 예전처럼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않지만 두렵지 않다. 75%의 시험이라니, 인생을 살며 지금까지 쳐본 시험중 가장 수치적으로는 쉬운 시험아닌가. 그래서 매일 아침 8시에 스터디를 하고 밤 열시반에 들어오는 생활을 하면서도 두렵지는 않다. 반쪽변호사니, 뭐니하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런 야유도 두렵지 않다. 세상이나 남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해서이거나, 자신감이 없거나, 정말 어려운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세상엔 그리 대단한 일도, 그리 무서운 일도, 그리 쉬운 일도 없다. 겪고, 그 안에서 순간을 살아가고 살아내면 된다. 그래서 춥지 않은 걸까.


9. 맛있는 밥을 먹고 멋진 호수를 보고 낙엽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시간을 행복하다 여기며 손을 잡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밝고 따뜻하다. 내 모든 비밀과 두려움을 털어놓고 안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난 이 가을이 그리 싸늘하지 않고 이번 겨울도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가을과 지난 겨울을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피었고, 여름도 지났고, 다시 찾아온 이 계절은 이미 다른 계절이고, 내가 다시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엄마가 바라는 삶일테니까.

2011. 7. 31. 비오는 일요일 dear diary


지금은 사라진 사람의 이름이 기명된 독서대를 들고 7년만에 되돌아와 다시 홀로 앉아 오래된 책을 펴고 읽는다. 7년전의 나와 5년전의 내가 만나는 이 곳은 집도 고향도 아니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의 한 자리를 너무도 당당히 꿰차고 내 뇌리에 남아있다. 몇 권 되지 않는 책장의 책들도 7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비록 판(版)은 바뀌었지만 민법과 민사소송법의 내용도 대동소이할 뿐이다.

성장과 성숙을 항상 얘기했지만 사실 변한 것도 그닥 없다. 여전히 천둥이 치면 무섭고 rock음악을 얘기하고 황석영은 감히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서른 둘의 나와 스물 다섯의 나는 어디에서 만나 이야기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만날 수 있을까. 그떄가 그래도 좋았다, 라는 것은 언제나 거짓이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방황과 들뜬 인생의 홍조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의 조류에 내려보내고 이제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처럼 다가올때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워질 때도 있다.

부끄럽지만 들떠 있었고, 온갖 실수와 오해로 뒤섞인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2004년의 소법전이 2011년의 소법전으로 바뀌고, 백화점 매대의 만원짜리 셔츠가 닥스의 백만원짜리 정장으로 바뀌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이 랩으로 바뀌고,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고시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변화에서,
아니면 알랭 드 보통의 교양서들이 처세서로 바뀐 내 책장에서,

최영미나 기형도를 위시하며 문학과 사랑을 주제넘게 휘두르던 그 유치하고 볼썽사나웠던 자의식 과잉의, 열등감 덩어리였던, 그 가난하지만 가난해보이고 싶지않아 몸부림치던 내 세상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던 그 청년을, 너무 우습고 부끄러워서 그 자신도 돌아보기 싫은 그 젊은 청년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내년 이맘때 즈음이면 나는 아마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던 내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침에 아내가 매주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보통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멋도 모르며 동생과 즐겨보던 드라마는 손자병법이었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나는 회사원인 아버지가 갖고 싶었고, 나이가 들자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의 삶을 갖기 위한 준비는 너무나 길었고, 그 일상을 위해 젊음을 바친 어머니를 잃고 나는 서른 둘이 되었다.

신림에서 홀로 비오는 주일을 맞아 밖에도 나가지 않고 머무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특히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이런 우중충한 날은 더더욱 그렇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곳에서 해가 들지 않는 이런 날, 부끄러운 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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